블로그와 책임

그동안 블로그를 못 열었던 것은, 사실은 루시앨이란 이름이 주는 부담감, 각종 아픈 기억들이 나를 짓눌러왔기 때문이다.

이전 글을 비공개로 해놓았다고 해도, 이미 나는 인터넷 상에서 루시앨이란 이름으로 활동해왔다. 사실 비공개로 한 것은 어느정도는 루시앨이란 이름으로 행해왔던 인터넷 상의 일들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더이상 피하지 않겠다. 여기에 적힌 나의 편린들 역시, 내 머리속을 스쳐가는 많은 생각들처럼, 나의 일부이다.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지금의 나는, 나이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요구할 뿐이다. 내 행적에 대한 책임. 그것은 타인에 대한 책임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은 자신과 타인 둘다를 향한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블로그를 보는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을수도 있고, 때로는 무례하게 보일수도 있고, 때로는 이상하게 보일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나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질 그날에, 스스로 책임을 질것이다.

이는 내가 모든 나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이다.

*채승병님 사이트의 글이 나를 복귀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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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by 루시앨 | 2010/12/31 23:59 | 일상 | 트랙백 | 덧글(20)

짧은 글

원래 내 강점은 긴글쓰기인데... 심력 낭비를 피하기 위해서, 하지만 꼭 하고싶은 말들을 위한 짧은 글.

1. 어떻게 바꿀지 길조차 보이지 않지만, 한국에서의 내 선택은 항상 Reason이 될 것이고, 그것으로 전선을 형성할거다.

2.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싶게 만들었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by 루시앨 | 2010/01/23 01:01 | 일상 | 트랙백 | 덧글(6)

2009년 정리

돌이켜보면 사실, 이글도 쓰고 싶진 않은 글이다. 애초에 글이란, 쓰고 싶을때 써야 하는거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난 2009년 정리는 그냥 포기하고 공부나 열심히 하기로 했다.

라고 하면 훼이크고...;

어쨌든 쓴다고 한 글 안쓰는건, 억지로 글쓰는것 보다 더 싫어한다. 그래서 내 마음이 잠시 동하도록, 모 블로그를 오늘도 잠시 눈팅하다가, 지금 정리글을 쓴다.

2009년 초는 잘 기억에 없다. 이미 먼 과거속 어딘가에 박혀있다. 1월 1일 어렴풋이 외가쪽 친척들을 만난 것이 생각이 나고, 대략 두시간도 있지 못해 나왔어야 한 기억이 난다. 공부는 손에 안잡히고, 외롭고. 뭐 그냥 그렇던 시기였다. 인강을 들으면서 혼잣말 하던 시기기도 하고. (그래서 사실 요즘 ㅁㅈ의 이야기를 가끔 들을때마다 안쓰럽다... 응, 벽에다 말거는건 나도 해봤었어. 벽은 참 소중한 존재이지. 거울이 없어서 다행이야. ) 그렇게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던것 같다. 그 와중에 모 트레이너와 모 지인간의 일이 얽혀서 밤중에 나왔다가기도 하고;; 운동을 시작해서 긍정적 마인드로 버텼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나름 처음으로 제대로 된 Weight-training을 했었는데, 근육이 발달하는게 신기했다. 그러나 그것도 이내 본격적 공부 시즌이 되서 때려치고 말았다. 어쩌면 죽 운동을 한게 내게 도움이 더 되었을라나? 잘 모르겠다. 암튼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지만, 익지도 않은 벼가 고개를 숙여서야 쓰나! 라는 마인드로 살았던듯 하다. (이 말은 아직도 ㄱㅎㅈ양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래도 나름 2월 중순이 끝나고는 또다시 반복적인 하루가 시작되었다. 늦잠자고, 학원 다니고, 밤에 공부하거나 딴짓하는 하루. 2월 초 약간 여유있으리라 생각했던 일정은 학원 3사의 담합을 통한 3순환 일정 땡기기때문에 급작스럽게 공부에 돌입하게 되었고, 똑같은 강의내용에 똑같은 문제를 또 풀면서 학원을 다녔던것 같다. 그래도 이때는 내 공부가 완성된 상태가 아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던것 같고. 이때 애니와 만화, 미드를 접하게 되었다. Boston Legal, Bigbang Theory, FLCL, 에바.. 특히 Boston Legal은 5시즌 전부를 다봤다. 영어가 하고 싶어졌다. 쉬는 시간에 TOEFL책을 풀거나, 알고리즘을 연습한다고 깝죽댔다. 바야돌리드 문제는 재미있었고, Codingdojo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가장 큰 유혹은... 대학원이었다. 복잡계 개론 등을 접하고, Santa Fe Institute등을 알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내 마음 속에 있던 대학원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났다. 이전에는 단순히 고시 붙고 가면 되지 했던 마음에서, 곧바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학원이 끝난 후 컴퓨터를 키자마자 장학재단을 찾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IVY League나 Stanford, UC같은 꿈의 대학들을 찾아보는 일도 늘어나게 되었다.

어쩌면 그 삶의 선택 순간에서, 차라리 영어에 올인해서 다음학기 교환학생을 가는게 내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난 행시를 하면서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TOEFL공부를 병행하기도 했고, 이미 시험 날짜도 5월 31일로 박아둔 상황이었다. 이런 나를 말린건... 사실 잘 모르겠다. 당시에는, 두가지 길을 모두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던게 아닐까 싶다. (사실 지금도 믿고 있긴 한데... 조금 달라졌다. 그건 추후 서술하겠다.) 고시합격생이 간지나게 IVY로 유학가면서 고시 따위 버린다는 스토리가 날 사로잡았을지도.

그와 동시에 외로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그 수많은 사람들, 대략 500개 정도 되는 번호들 속에서 연락할 사람이란 아무도 없었다. ㄱㅎㅅ씨는 연애에, ㄱㄱㅂ씨는 군대에 있었고, 공부로 도피하는 것도 하루 이틀. 특히 FLCL 같은 관계지향적 만화들은 사람을 미치게 한것 같다. 차츰 sprinter77님이나 sonnet님, 혹은 다른 블로그에 가는게 일이 되었다. 외로워서 죽을것 같다고 생각된 날은 정말 죽고 싶었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 그렇게 생각했다. 이 길을 걸어나가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것인가. 어쩌면 대학원을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최소한, 대학원을 가서는 옆에 있는 다른 사람과 말은 하면서 살거 아니냐는, 소박한, 그러나 절박한 이유도 있던것 같다. 불면증은 심해졌고, 얼굴은 피폐해졌고, 몸은 뚱뚱해졌다.

이런 나를 구원했던건 다름아닌 상상 모임이었던것 같다. ㅇㅇ이가 알려준 이 모임은 내게 숨통을 트게 만들어주었다. 동시에 외로움도 없애주었다. 이미 알고 있던 ㅅㅎ이가 있다는 것도, ㅅㅇ형, ㅁㅈ, 지금은 안나오지만, 순수한 친구 ㅎㅂ이를 같이 알아서 더 친해졌던 ㄴㅎ, 그리고 ㄷㅎ이와 ㅈㅅ이 역시,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이들과 같이 생각, 낭만을 나누면서, 조금 나 자신을 추스릴 기회를 얻었던것 같다. 동시에... 3순환을 따라갈 수 있었던것 같기도 하다.

이런 마음의 안정을 조금이나마 얻으면서, 공부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어느정도 수준이 되자 답안이 잘 씌어졌다. 물론 외롭다는건 변함이 없었고, 난 하루에 20분은 꼭 싸이와 블로그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욕구와 목표를 조화시키는 방안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수험기간 후반부는 하루하루 무덤덤했다. 5월 31일날 걸려온 전화는 내 TOEFL을 망쳤지만, 어쩌면 내 마음을 안정시킨 전화였을수 있다. 그날 만난 사람은 글과 사람이 다르다는걸 확신시켜 주었고.

시험 기간에는 많은 격려 문자를 받았고, 집에서 왔다갔다 했다. ㅁㄹㄴㅁㅇ 할리스커피는 잊을수 없다. 최적의 공부장소였다. 이번 시험기간 나는 모든 것을 다 쓰고 나와서 내가 붙을거라 확신했다. 그뒤 여름을 보냈다. 때로는 압구정에서 신림동까지 구두를 신고 걸어 봤고, 농구를 하기도, 2학기 동아리 모임에 나가기도, 책을 읽기도, ㅈㅅ님에게 확률론과 이산수학 과외를 받기도 하는 등. 소소하고 평온한 나날들이었다. (아, 추가하자면, 신촌의 The BAR를 알게 된 것을 빼놓을 수 없다.ㅋ 정말 신촌 최고의 빠이다.) 이 기간에 (매우 아이러니컬하고, 동시에 모순적이지만) 문화비평과 수학에 관심을 가진것 같다. 사실 난 미적 성적이 안좋아서 수학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나 4월달에 고민한 수학 이중전공은 역시 나의 길이라 생각했다. 확률론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막연하게만 알던 해석학이 대충 무엇을 하는 것인지 ㅈㅅ님을 통해서 감을 잡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택광의 글을 읽으면서 루카치를 다시 읽었고, 제임슨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점점 문화비평의 매력 (어쩌면, 그저 서사의 매력이었을지도 모르는데)에 끌려가게 되었다.

2학기는 덕분에 좀 빡센 과목들로만 시간표를 구성했다. 난 나름 안배했다고 생각했는데, 논문과 ㅈㅅㅆ가 이 모든 안배를 망쳐놓았다. 그렇다고 위 두가지 활동을 후회할 생각은 없다. 논문을 쓰면서 난 너무 행복했다. 논문을 쓰면서 무언가 삶에 중요한 일이 생겼다. 게다가.. 논문 쓰는 활동 그 자체가 너무 나를 사로잡았다. 이렇게만 살면 하루에 밥만 먹여주어도 살수 있을것 같았다. 교수님에게 두번이나 주제를 뒤집어업히면서도, 논문 때문에 토론하면서 택시를 타고 집에갔어도, 논문을 쓰느라 밤을 두세번 샜는데도 너무 행복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와 운이 합쳐서저 논문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고, (나중에 대학원생 누나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논문으로선 최고의 칭찬인 "논리적"이라는 평을 받을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이런 것들을 느끼면서 대학원 유학을 생각하게 되서 ㅈㅅㅆ ㅂㅈㄴㅅ ㅊㅌ에들어 갔다. 그곳에서는 교수가 된 선배의 삶을 듣고 행복했고, 각종 교수님들과 친분을 쌓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저 삶이 나의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Apply의 꿈에 부풀어서, SOP를 쓰는 법이나, 대학원생 분들을 보면서 행복해했다. 거기에 더해, 이번에도 좋은 후배들과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ㅅㅊ형은 훌륭하게 ㅈㅅㅆ를 이끌어 오셨던것 같다. 포럼을 기획하면서 많은 교수님들을 초대하고, 동시에 나 자신의 기획력을 시험해 보았다. 2년 쉬긴 했지만, 아직 녹슬진 않았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고, 교수님들의 칭찬도 들었으며, 논문 퀄리티 역시 양질이기에 여타 학내 저널에서 연락이 왔을 정도였다.

이번학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서양근대철학사와 현대 인식론, 그리고 이산수학과 확률론이다. 서양근대철학사에서는 문교수님 방식대로 버클리 강독을 위주로 했는데,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읽는 법을 훈련할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제대로 수업을 안나가서;;;) 또 버클리의 철저한 경험주의적 태도는 꽤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 있어 관념은 결국 지각가능한 것이고, 지각될 수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그의 인식론이 은근 철저하다고 생각했다. 현대 인식론 시간에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난 이번학기에 핵심적으로 배운 내용은 바로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언어적"으로 탐구하자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트겐슈타인은 explicate the world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철학적 탐구의 맥락에서는, 곧 세상에서 sense와 nonsense를 가려내서, 결국 진리를 드러내자는 의미이다. (특히 그 대상이, 이미 누구나 알고 있기에 무시하는, 바로 언어와 grammar이다.) 이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비트겐슈타인은 Intentionality와 관련해, 결국 Meaning이란 어떤 대응관계가 아닌, 그저 다가감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신비주의적이긴 하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정말, 다가감이란 개념 없이는 쉽사리 설명할 수 없다. 이미 지칭언어가 가지는 난점들이 드러난 이상. 거기에 덧붙여서...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다음 말 "I would like to say, ’this book is written to the Glory of God’, but nowadays .... it would not be correctly understood."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산수학은 물론 내용 자체도 즐거웠지만, 교수님이 끊임없이 더 공부하려면 어떤 책을 봐야 하는지 알려주셔서 좋았다. 추후 공부를 시작할 때 참고해도 좋을 정도로. 그리고 많은 새로운 개념들을 들을 수 있었다. (글과 상관없이 추가하자면, 상황판단 문제의 10%는 이산수학 내용만 알면 1초만에 풀리는 문제가 많다;;ㅋ) 확률론 역시, 원래 이승철 교수님 수업이야 편했지만, 이번에 Conditioning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던것 같아서 기분 좋았다. 사실 거의 모든 확률론 문제는 Indexing Random Variable을 Bernouille (p)로 만들어서 풀면 너무 쉽게 풀린다. 뭐 더 어려워봤자 풀릴때까지 Conditioning하면 되는거고... 둘다 성적은 괜찮게 나와서 더 기뻤다.

그리고 발표가 났다. 뭐 이미 공개된 포스팅에도 올렸지만, 떨어졌다. 소수점 차. 얼마 안되지만, 또 엄청나게 큰 그 점수차. 이상하게 술 생각은 나지 않았다. 많은 지인들은 나를 진심으로 격려해 주었다. 그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실망감을 안겨준 것 같아서. 그와 동시에, 내 진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건대 이번 연도가 Career Path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찬스였다. 남은 기간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진로를 물어보았다. 부모님은 (당연한 말이지만) 원래 하던걸 계속 하길 원하셨고, 날 누구보다 많이 지켜봐주신 ㄷㄳ 교수님은, 자신이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이 바로 이거였는데, 지금와서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 특히 수학이라는, 완전히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꿀 필요가 있을까라고 조언해주셨다. ㄱㅇㅎ교수님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학기 끝나고 도와주신다 하였고, ㅇㅅㅈ교수님은 두 분야를 모두 잘 할테지만, 자신이라면 석학이 되기 위해서, 교수 이상을 보고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ㅇㅅㅈ 교수님의 지인 분은,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며, 내겐 어떤 광기도 보이지 않기에, 굳이 도를 닦으러 들어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조언을 해주셨다. (난 아직도 이 지인분이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아마 분석철학 혹은 수리논리학의 길에 계신 분이라 추측할 뿐이다. 다만, 글이 매우 강한걸로 보아, 포닥이 아닐까 추측된다.) ㅈㄷ형은 지금같은 Fluctuate한 세상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려도 판단할 수 없다고 하셨고, ㅅㅊ형께서는 결국 선택 그 자체가 아닌, 선택을 위해 노력한 그 삶이 선택을 정당화한다는 말을 해주셨다. ㅇㅁ이는,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내가 이미 오이디푸스처럼, 세이렌의 유혹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자신을 돛대에 매달았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ㅈㅇ형은 나중에 군대와도 되니까 그딴 생각 하지말고 고시나 보라고 하셨고, 내 인생의 친구들은, 일단 김학은 내게 고시를, 김근은 내게 대학원을 추천해주었다. 이 둘이 나에 대해 서로 다른 결정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내 영어선생님이자 후배인 ㅁㅈ이는 대학원이 더 어울릴것 같다고 하였고, 이번학기 의형제를 맺은 ㅇㅅ는 날 고시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ㅁㅅ는 내가 대학원으로 가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공부를 하겠냐고 말하고, ㅅㅎ이는 형 여행이나 갔다와요 그러고, ㅂㅎ이는 형 그럼 돌리시는것도 낫겠네요, ㄴㄹ(ㅇㅇ이)는 나와 같이 고민하면서, 둘다 ㅎㅇ이를 부러워하고, ㅇㅈ이는 어떤 길을 선택해도 응원할 거라고 말해주고, ㅅㅇ형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좌절일 뿐이라고 격려해 주었으며, ㅈㅎ옹은 내게 열심히 살라고 말해 주었다. ㄱㅇ이는 행시, ㅈㅅ이는 일단 니가 의지가 있어야 행시를 하지 않겠냐고 하였고, ㄱ형은 나를 계속 회장직 수락으로 압박했다. ㅁㅅ눈하는 내게 대학원이 더 어울릴것 같다고 하시고, ㄱㅇ의 여친 ㅈㅇ씨는 지식소비자로서의 삶이 자신에겐 더 어울리는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ㅎㅇ형은 다만 취미정도로 생각해서, 너무 잘되려고만 하지 않으면 괜찮을것 같다고, 자신과 나중에 누가더 ㅇㅇ인지 내기하자고 하셨다. ㅅㅎ님은 갈수 있으면 가라고 하셨고. 내 전인격적 지지자님은 정말 고맙게도, 어떤 선택을 하든 나를 응원하겠다는 말을 하고, 심지어 몇몇 길에서는 내가 못이룬 꿈 중 자신의 꿈과 겹치는 일부에 대해서 이루어주겠다고 하였다. 너무 감사했다. 집에서는 점점 아버지와 조금씩 보이지 않는 선이 생겨갔다. 난 결국 대학원을 선택하기로 결심을 하고, ㅈㅅㅆ ㅂㅈㅊㅌ 회장을 맡아버렸다. 그리고 문제는, 이를 번복했다는 것이다.

번복의 이유는 사실 ㄴㄹ와의 대화와 ㅈㅇ눈하와의 대화가 컸다. 사실,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 주변엔 너무도 많은 조언자들이 하나같이 훌륭한 조언을 해주었고, 난 어느것을 따라가야 할지 일희일비 하고있었다. 내 마음은 다시 1학기 때 처럼, 감당하기 힘든 삶으로 흘러들어갔다. 어느날 ㅇㅈㅅ와 만난 자리에서 술병을 깨고 싶은유혹마저 들었다. 왜 이 많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지? 이 모두의 말을 어떻게 내 것으로소화해야 할까. 결국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 ㅇㅇ이에게 전화했다. ㅇㅇ이는 이미 선택을 마쳤다. 그녀는 자신 역시 이런 고민의 순간을 견딜 수 없었기에, 그리고 이 시험은 아마 자신의 발목을 계속 걸미적거리게 할 테이기에, 또한 집안의 반대 역시 무시할 수 없기에, 또 이것을 빨리 끝내야 자신이 진정으로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생각에, 우선 시험을 보는 것을 택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영역을 축소하고, 대신 공부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는 그녀의 생각은, 내게는 매우 매력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난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사실 소시민성에 깊이 공감하지만, 나로서는 소시민성보다는, 조금더 나아가서, 야망을 이루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있다. 내가 과연 그런 욕망에 이끌림 없이 원하는 공부만을 하는 삶을 견딜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ㅈㅇ눈하를 만나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풀렸다. 사실 ㅈㅇ눈하가 무언가 내게 직접적 조언을 주신것 보다는, 잘 들어주셨다. 상담에 있어서 잘 들어주는 것 그 자체가 매우 큰 기능임을 사실 그제서야 알았다. ㅈㅇ눈하는 우선 내 선택의 문제가 얽히고 섥혀있음을 깨닫게 한 뒤, 장고 끝에 악수를 둘 수 있음을 경고해 주셨다. 또한 자신 역시 대학원에서 항상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다고 알려주시고, 내 문제를 아마 단순히 진로 결정의 문제로 환원시켜서, 혹은 독립시켜서 풀 순 없으리라 강조하셨다. 그리고 결국 이런 경우 가장 좋은 해결책은, Tying one's hand. 그런식으로 내 마음을 안정시켜준 채 이야기를 끝냈다.

그리고.. 결국 난 다시 시험을 치는 길을 선택했다. 사실 명분은 다음과 같다. 시험을 한번 더 쳐서, 이번에 붙으면 유예가 생길테고, 그 동안 대학원을 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볼수 있다. 게다가 다시 갈아엎어야 하는 학점들도 꽤 있는데 시험을 한번 더치면 1년이 늦어지긴 하지만 학점을 좀 갈아엎을 수 있다. 그리고 Risk가 낮다. 또한 내 열정은, be gifted, explicate the world라는 내 열정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이 길을 따라가면서도 난 충분히 위의 문구를 지킬 수 있다. 게다가 나 역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싶다. 아무래도 공부로 도피하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내 사람들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생각하면 이런 명분이 과연 날 결정하게 만들었을까? 명분, 논리는 언제나 대칭적이다. 내게 도움이 될 거라는 논리는 그와 반대로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양자는 항상 대칭적이고, 설령 어느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어느 하나를 포기하게 만든다. 물론 선택 당시에는 위와같은 명분이 내가 이 길을 선택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할때, 내가 다시 시험을 보기로 결정한 진짜 이유는... 내 몸은 대학원을 향해 달려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것은, 고시와 다르게, 대학원의 길을 가는데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 진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던 그때의 나를 돌이켰을때, 두 길 모두 환상적이었다. 두가지 길 모두 결론 내리기 어려울정도로 좋은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머리로는 두 길에서의 나를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내 몸은 대학원에 반응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머리로는 고민하고 있었더라도, 내 몸이 반응을 했다면, 아마 수업을 빼먹는 일에 매우 신중했을 것이고, 각종 숙제들도 잘 제출하였을 것이며, 대학원의 삶에 대해 더이상 환상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환상을 가질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을때, 난 아마 문제를 하나 더풀고 책을 한줄 더 읽었을테니까. 이미 내 삶의 지향성은 학자의 길로 이끌렸을 테니까.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생각의 시간들이 서서히 깨어날 준비를 하자, 마음은 불안해졌다. 계절학기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미칠듯이 고민했던것을 기억한다. 사실 그 시점은, 이미 대학원을 마음속으로 더 기울어졌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돈을 넣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쉬면 안된다는 불안감이 솟구쳤다. 내 전인격적 지지자님의 훌륭한 판단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 다음시간에 있던 시험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학기가 마치고 나서, 고민하던 그 어느날, 내 몸은 고시쩜지오쩜케이알을 들어가고 있었고, 결국 ㅇㅇ이와 전화한 후, 최종적 선택을 내리게 되었다. (부모님께서도 놀라셨다. 열두번도 마음이 더바뀐다고.)

글쎄, 내 몸이 끌리는 대상이 공무원인지, 교수인지, 아니면 고시와 학부 공부라는 활동인지에 대한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최종 선택을 했다. 근데 과연 이게 "내"가 정한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물론 결정 당시에는 몰랐던 일이다. 지금 되돌아보니 이렇다는 거니까, 어쩌면 내 선택적 기억에 의한 재구성일수도 있겠다.)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글쎄, 과연 다시 돌아갔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하지만, 결정하는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여러 것들은, 판타지이다. 물론 내 안의 생각들은, 각종 시나리오를 쓰면서 나 자신을 끌고 가려 한다. 그러나, 손은 눈보다 빠르듯, 사고는 욕망을 이길 수 없다. 내 안에 있던 강렬한 지식 생산에의 욕구는 사실 그저 내 생각,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내가 정말 그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면, 그 길로 갈까 생각하기 전에, 이미 한발짝 내딛지 않았을까? 이것이 아마 선생님의 지인이 쓰신, 광기가 부족하다는 의미, 현실적 즐거움을 알고있다는 의미였던것 같다. 입으로는 나는 앎을 위해서 행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몸으로는 언제나 행복을 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괴로웠지만, 지금은, 받아들이려 한다.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을 현실적 행복으로 채워 넣어야지만, 나는 앎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에야, Aldous Huxely의 말이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이런 몸을 이끌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려면, 어느정도 충족시켜주어야 하겠지. 지금은 그저 내 기억속의 한켠으로 사라지신, 자이젠 님의 글 한구절이 생각난다.

"로브그리예는 이 책의 서문을 통하여 “세계는 의미있는 것도 부조리 한 것도 아니다. 세계는 단지 있는 것이다.” 라고 쓰고 있다. 바라보는 대상을 향하여, 아무런 감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극사실적으로 인간적이다. 우리의 곁에, 단지 “있는 것”으로서의 존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단지, 우리의 곁에 “있는 것” 으로서의 그 존재를 향하여 우리는, 고민하기 전에, 미안해 하기 전에, 슬퍼하기 전에, 무조건 냅다 달려가야 한다. 달려갔어야 했다. 그것만이 사실이고 사실이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관계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이미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판타지다."

 이런 무거운 주제로 고민하게 한 나를 위한 신의 배려일런지는 몰라도, 내게 축복이 하나 내려졌다. 바로 내 전인격적 지지자이자, 지음이자, Soul-mate를 얻은 일이다. 난 이 하나만으로 내 삶 전체가 축복받았다는걸, 그리고 그분이 날 매우 아끼고 계시다는것을 느낀다. 굉장히 우연적인 몇몇 사건들로 인해서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알게 된 것 같고, 또한 가까워졌다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지든, 이런 이가 내 곁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위에서 했던 모든 죽고싶은 감정들과 고민은 이미 내 마음속을 떠난지 오래이다. 단지 존재 그 자체가 너무나 감사하고, 또 존재를 느낄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내게 과분한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다. 아마 이번연도 행시를 붙었다면 이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었기에, 오히려, 이 사람을 알게 되고 나서 난 내가 행시를 떨어진 것에 대해 깊은 감사마저 느끼고 있다. 2009년은 단지 이분을 알게되어서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 꿈, 그리고 또다른 나에 대해서, 더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가로막는 많은 것들을 뚫고 또 다른 나에게, 그리고 내 꿈을 향해 달려나갈 뿐이다. 몸은 반응하고 있지만, 머리로는 아직 환상처럼 느껴지는, 이 둘과 함께하는 삶을, 온전히 나의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이것이 2009년의 결산이면서, 2010년의 다짐이다.

by 루시앨 | 2010/01/03 19:36 | 일상 | 트랙백 | 덧글(8)

2009 이글루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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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도에는 블로그를 거의 손을 놓은것 같습니다. 여름방학때 잠깐 깨작대다가, 아예 잠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아주신 많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도록 하지요. 쓰고 싶은 글은 많았지만, 사정상 쓸수가 없던 글들이 많은 해였어요. 일도 많았고, 방황도 많이 하고 해서. 그래서 글이 잘 안써졌어요. 뭔가 내식대로 본 것은 많았지만, 녹여낼 수는 없던 한해였던것 같고.

한해 정리는, 내일이나 모레쯤, 시간 날때 해보도록 하지요. 오늘 만난 ㅇㄴㄹ양은 사실 Work단위로 시간을 끊어 산다고 하던데... 뭐 저도 점점 그렇게 되가는 듯 싶습니다.

by 루시앨 | 2010/01/01 02:52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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