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시위 다녀왔습니다.

0. 참여 결정.

참여 결정은 11시 30분에 이루어졌습니다. 사과탄이 터졌다는 뉴스(오보인것 같습니다만, 아시안머니어쩌고...라는 링크에서 본 것으로 기억합니다.) 를 보고, 즉홍적으로 참여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행히 베 모 학원 성 모 강사가 하루 늦춰 강의를 시작한다는 것도 가는데 부담을 덜어주게 된 주요 동기였습니다.) 버스타고 가는 길에서 생각해 보건데, 제 머릿속에는 20년 만의 첫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룸펜 연합 시위를 보러간다는 흥분이 강했던걸 인정합니다. 동시에 밤시위의 폭력성이 어느정도인지를 직접 관찰하고자 하는 동기도 있었습니다.

I. 개인사적 구성 - 시간을 중심으로

1. 삼청동 집회 (1시~ 4시)
152를 타고 을지로에 도착해서 광화문까지 죽어라 뛰어서 1시에 도착했습니다. 삼청동과 경복궁 중 삼청동 쪽이 좀더 위험하다는 말에 삼청동으로 갔습니다.(아무래도 위험한 곳에 사람이 한명이라도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도착하자마자, 전경들이 인사동쪽에서 전지해 오더군요. 오는동안 광화문에서 N개 중대 규모의 병사를 본 마당에, 인사동 방면에서 경찰 중대를 맞이하게 되면 삼청동은 완전히 포위되리라 생각했었습니다만, 다행히 시민들의 항의에 경찰은 돌아갔습니다.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시부터 한시 반까지 저는 선두에서 2~3열에 서서 버스 바리케이드 사이 골목에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쯤 전경의 버스 앞 바리케이드를 뚫고 들어가는데 일조하게 되었죠. 일단 첫 인상은 시위가 다른 시위와는 좀 다른 분위기가 났습니다. 그 전진으로 전경들이 고립됬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게 길을 터주었습니다. 그 뒤 시위대는 그 위치를 지키면서, 노래와 구호 등을 외치며 버텼습니다. 대략 이런 구호들과 노래가 불리웠습니다.


이명박은 물러가라(퇴진하라), 쥐새끼는 때려잡자, YTN 꺼져라. (이때 YTN기자가 버스 바리케이드 위(그니까 버스 천정 위)에서 찍고 있었는데, 무슨 편파보도 사건 같은게 있던 모양입니다. 저는 처음에 버스가 움직이는데 YTN 기자 때문에 안전 문제로 못움직이는줄 알고 그런줄 알았습니다.) MBC  (엠비시는 환영받았습니다. 유일하게 시위대의 호응을 받은 방송사였죠.

아리랑, 한국~ 오오오오~ 한국~ 오오오오(제목은 모르고;; 월드컵 응원때 부르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오늘 시위로 가사를 외웠습니다.) 앞으로-앞으로- (주로 전경과 대치 중 전진하려 할 때 사용한 듯 합니다.)


한시 반즈음부터 삼청동에서 살수포를 뿜었습니다. 한 2미터 위에서 거의 직사로 뿌려대서, 전 솔직히 살수포는 처음이라 무서워서 피하긴 했습니다만, 곧 익숙해 지더군요.  그렇게 한 두번 정도를 뿜는 동안에, 시위 동참자들도 버스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되있었고, 고대총학생회 깃발을 든 사람이 올라가서 살수포를 건드리려 하자 살수포를 위로 올리면서 그사람에게 직사를 하더군요. 두명 정도가 버스 위에서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질 뻔 했습니다. 살수포 쏜 책임자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살수포 직사로 직격당하시면 알겠지만, 버티는건 고사하고 맞자마자 맞은 부위가 굽혀집니다. (보통 고개 숙여서 허리로 맞아내는데, 한번 맞아내면 꽤 아프죠.) 그걸 근거리에서 (1미터 정도되어보이는데) 직사로 얼굴에 쏘는 행위는 경찰도 흥분하지 않았다면 못했을 짓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경찰 책임자의 대응은 미흡했다 보여집니다.

그 분이 내려간 뒤, 살수포를 더이상 쏘진 않더군요. 물론 쏘려는 기미는 있었습니다만. 중간 중간에 시민들이 전경 버스 시동걸어 움직이려는 시도도 해보고, 구호를 많이 외쳐되었습니다. 거의 두시간동안 쉬지 않고 여러 구호를 외친것 같습니다. 위에 올린 구호들 외에도

조중동은 꺼져라, 전경들을 재워라(즉, 전경이 무슨죄가 있냐는 이야기), 헌법1조가지고 만든 노래(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명박 퇴진, 이명박을 깨워라, 20미터 뒤로가(어떤 사람이 살수차의 살수가 불법적이라면서 20미터 뒤로 빼서 살수해야 한다고 말해서 나온 구호입니다.) 등등을 불렀습니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초코파이, 물, 김밥, 샌드위치 등등을 보급해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누구신지 참 궁금했습니다만. 한 세시 넘어서 부터는 전경들과 나눠 먹는것 같기도 했는데, 정확히 제가 본 것은 전경들이 얼굴에 쓰는 플라스틱을 걷고 시위대와 이야기 하는 모습이라, 음식을 나눠먹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 두시간동안은 어느정도 긴장감과 평화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삼청동 시위에서 개인적인 불만을 가진것이, 연대 깃발은 하나도 안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문대에서 삼청동 쪽으로 온것 같긴 한데, 잘 보이지 않더군요. 혼자 나간 터라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같은학교 학생이 덜 뻘쭘한 지라, 그자리에 나온 법대 02학번 선배를 찾아서 주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뒤 속으로 총학 욕을 좀 했는데, 알고 보니 더 힘든곳에 있었더군요.

두시간~세시간 동안 쉬지않고 구호를 외치면서, 힘든 사람들, 그리고 찬물에 맞아 추운 사람들은 뒤쪽으로 빠져나가서, 모닥불(어디서 주워온지 모를 판자로 불을 피우더군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모닥불에 있다가 또 마르면 다시 돌아가는 식이었죠.

기자들은 YTN기자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만, (제 추측으로는 가장 먼저 삼청동에 온것 같습니다.) 워낙 시위대에게 욕을 많이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KBS(이들은 시위대 안으로 들어왔다가, 갑자기 버스 위로 올라가더군요), MBC(버스 위에 있다가, 한 서너시쯤 치열한 대치현장 5~6줄 뒤에 자리잡아서 촬영했습니다. 사람들은 MBC를 환호했습니다.) AP통신(이분은 버스와 버스 사이- 이건 가보신 분들만이 알듯;; 글로 설명하기 난감하네요. 암튼, 대치중인 장소 바로 옆쪽에 버스와 버스사이가 비어있었습니다. - 에서 촬용하셨습니다.) 진보신당 현장중계원 (이들은 좀 쳐져있더군요.) 그외 어딘지 모르겠지만 노트북과 카메라를 동시에 들고 현장 생중계하시는 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위 초반에 BBC와 NHK에서 생방송한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문에 시위대가 힘을 얻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시위대는 깃발들로 구분해볼때, 금속노조를 비롯한 몇몇 노조(죄송하지만 깃발들이 익숙치 않아서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고대 총학, 이화여대 개인참가, 카이스트 동아리(?) 참가, 서울대 동연, 연세대 문대(노란깃발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균관대 단과대(어디 단과대인지 기억이 안납니다.) 동아리 ㄵ(무슨학교인지 모르고, 전부를 썼다가 혹시 피해가 갈까봐 이니셜로 씁니다.) 다음 아고라 등지에서 온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촛불 집회에서는 "깃발 내려"라고 외친다고 들었는데, 밤 분위기는 또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저는 김밥과 물을 좀 먹고, 삼청동 쪽은 연일 구호만 외쳐대 약간 싫증이 난 터라, 동시에 서있자니 발이 아파서 차라리 걸어서 다리를 아프게 하자는 생각과,  아는 사람도 없는데 효자동 쪽에 혹시 아는 사람이 있나 해서 그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아마 한 네시쯤일 겁니다.

2. 효자동-광화문 집회(4시~6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크럼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제가 가고 나서 얼마 안있어, 갑자기 전경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더군요. 몇몇 분들이 흥분해서 물병을 던지고 전경도 맞대응했지요. 저도 약간 흥분되어서, 비폭력 구호에 몇몇 상징적인 바디 랭귀지를 섞은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동일하게 호응해주시는 전경분이 있어서 감사했지요. 전체적으로 전경들이 매우 흥분한것 처럼 보였습니다. 아마 겁을 주기 위한 의도라 보여집니다.

전경들은 효자동 골목에서 뛰쳐나와서 살수차를 중심으로 신촌 방향의 큰 거리를 장악했습니다. 방패를 두드려대서 겁을 주더군요. 아마 최루탄이 있었다는 말 중 대부분은 방패소리와 페퍼포그 발사소리의 유사성 + 전경의 물병던지기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초반 전경의 배치에 있어서는 상호 충돌이 꽤 격렬했습니다. 주로 물병과 방패로 이루어진 투쟁에서 시위대는 초반에 조직되지 않은 분들이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약간 밀렸습니다.

삼청동 방향에서의 좁은 바리케이드 입구 방어와 광화문 삼거리 연대방향 큰길 방어는 (현장에서)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경찰이 친 바리케이드는 경찰 자신에게도 유리하긴 하지만, 시위대에게도 유리했는데, 조직력에서 전경에게 절대적으로 딸리는 시위대는 좁은 지형을 이용해서 조직적 대치를 어느정도는 힘 및 쪽수에 의해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길 대치에서는 초반에 시위대의 중앙이 너무 쉽게 뚤렸고, 이는 측면에 있는 사람들의 고립 및 연행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반 이후에는 경찰의 중앙 돌파가 그리 효율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선 설명 이전에 시위대의 구성을 살피면, 시위대는 연대 총학생회, 이화여대 총학생회, 성균관대 총학생회, 서울대 사회대, 서울대 농대, 중앙대 자연대, 고대 문대, 서울대 사회대, 서총련, 한총련, 몇몇 노조(역시 깃발을 제대로 못봤습니다.) 등으로 전반적으로 삼청동보다 단체 등에서 많이 나온 것으로 보여집니다.

시위대는 큰길 방어에 있어서, 개인 참여자 및 노조 관계자(...인지 확실치 않지만, 그 자리에서 만난 몇몇 분들은 시위의 전반적인 상황을 정말 잘 꿰뚫고 계셔서 놀랐습니다.)를 중심으로 경찰과 1열로 대치를 하고, 대학생들 내지 조직화된 집단을 2열에 세웠습니다. 이는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1열에서 직접적으로 대치를 해 전경의 전진을 막고, 1열이 흩어지면 2열쪽이 중앙 돌파를 차단하면서 측면이 고립되지 않은 채로 후퇴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전경이 효자동 시위대를 삼청동 쪽으로 몰아가려 해서, 제 생각은 혹시라도 광화문에서 포위한 뒤 강제연행하려 그러나 하는 생각이 있어서 좀 다급해보였습니다. 근데 전경들의 전진을 막을 수가 없더군요. 일단 살수포가 그원인 중 하나인듯 싶습니다. 몇시부터인진 기억이 안나지만 큰길로 쫓겨난뒤 첫 살수포를 맞고 나서부터 저는 연대 총학과 행동을 같이했습니다. 그동안 살수포를 한 네번 정도 맞은 기억이 나는데, 살수포 자체는 한 두번 맞어보면 어떻게 맞아야 피해가 최소화 되는지 압니다. (스크럼 짠채로 어깨 수그려서 허리로 빗기게 맞아내면 가장 덜 아픕니다.) 문제는, 살수포가 워낙 차갑고, 살수포를 쏠 때마다 경고 방송 및 경찰의 전진 등으로 어느정도 인터벌이 생기는데, 이때 저체온증을 비롯한 추위가 가장 견디기 힘듭니다. 저도 세번째 맞고 나서부터는 너무 추워서 노래를 불러서 겨우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두번째로, 큰길은 좁은길과 달리, 조직력이 매우 큰 이점을 발휘하는 듯 싶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시위대가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결국 광화문 삼거리로 밀려와서, 시위대가 두곳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효자동방면 시위대가 순신장군님 동상이 계시는 세종로로 몰려갔고, 일부 참가자들이 삼청동쪽과 합류를 한 듯 싶었습니다만,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삼청동쪽 시위대의 위치가 5방면의 길이 만나는 데 그중 삼청동쪽에 시위대가 집중되 있어서, 경찰이 포위하려고만 하면 너무 쉽게 될 수 있다는게 걱정되었긴 하였습니다.

이때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는데, 주로 투쟁가가 중심을 이루어서 잘 모르는 노래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살수포를 맞는 상황이라 노래가 쉽게 불려지기 어려웠구요. 그래도 시위대는 세번째 살수포 즈음에는 "온수! 온수!" "마실물! 마실물!"을 외치는 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신분이 신분인지라, 또한 너무 추워서 몸을 못움직이겠기에, 6시를 기점으로 대열에서 벗어나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였고, 그게 7시입니다.  5시간 정도 돌아댕긴 셈이군요.

II. 생각해 볼 점들

1. 시위대

시위대의 공통점은 딱 두가지로 보여집니다. 하나는, 다들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엠비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어떤 공통점으로 시위대를 묶기 어려웠습니다. 단체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만, 단체의 구호가 외쳐진 적은 고대총학생회 깃발을 든 사람이 살수포로 직격탄을 맞았을때 저혼자 외친 "민족고대!"가 거의 유일했다고 여겨집니다.
 게다가 노래 역시 통일이 안되서 이노래 저노래 부르고 섞이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런 상황에서 시위가 상당히 효율적으로 이어진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우석훈 교수 말대로, 시위대가 진화한다는 말에 공감하고플 정도입니다.

어째서 이런 시위가 효율적으로 일주일간 이어져왔는가- 가 일단 한가지 의문이 되겠습니다.

2. 경찰

전반적으로 경찰은 상황통제를 잘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현장 지휘관의 가장 큰 책임은 다른 무엇보다 부하들의 감정 통제입니다. 가장 효율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고, 또한 억제시키는게 그들의 임무인데, 그렇게 분노가 통제된 것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3. 비폭력성

경찰이 폭력을 행사(물병던져 사람맞추기)해도 그걸 그냥 맞은채로 있고, 비폭력 구호를 외치는 분들이 제 목격에만 세팀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그 이상 있던것 같지만, 어떻게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시위대가 비폭력성을 공유하는지가 역시 하나의 의문점입니다.

4. 여성-남성 문제

예비군복 입은 분들이 그리 많이 보이진 않더군요. 삼청동에서는 전반적으로 여자라고 앞에서 빼는 일은 한시 즈음을 제외하곤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성 분들도 앞열에 있다가 버티기 괴로우시면 뒤로 빠지셨고. 물론 이문제에 관해서 저는 라임 님의 입장에 동의합니다만, 적어도 어제 집회에 한해서는 사수대라는, 보호-피보호의 입장이 제가 인식할 정도로 드러나지는 않은듯 합니다.

5. 20대 주도의 시위

어제 밤 집회는 물론 다양한 분들이 참여했습니다만, 무엇보다 20대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듯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논의되는 20대의 사회참여와 관련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요인이 그토록 정치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들을 움직였을까요?

6. 시위의 결과

87년 6월 항쟁이 결국 87체제라는 일종의 통제된 이행으로 끝났는데, 현재의 시위도 그것을 닮아 가는 것이 아닌거 걱정이 됩니다. 사실상 (18대 국회 안에서는) 현 내각의 대안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는 좀더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라 함부로 말하기가 좀 힘듭니다만은.

7. 집시법의 개정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8. 민중 가요

같이 부를 노래가 월드컵 응원가 내지는 동요, 아리랑 정도로 한정되는 것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제 입장이 대학생이면서 기독교 계열이라 그런지, 찬송가 혹은 대학 응원가 중에 개사하면 괜찮겠다 싶은 멜로디가 몇 있었는데, 불러도 그 장소에서 공감이 안갈것 같았습니다. 공통적으로 부를 만한 멜로디가 좀 경쾌한 걸로 두셋은 더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9. 민족주의

... 이걸 민족주의라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시위대는 끊임없이 태극기, 애국가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애국, 민족적 충성심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민족의 "정통"이라는 상징을 탈취하기 위한 상징 다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시위가 굳이 이렇게 가야되는 걸까요? 내가 정통이 아니어도, 내 의견이 한 사람의 시민의 의견으로서 받아들여지면 안되는 걸까요?  시민사회가 국가에 우선해선 안되는 것일까요?

10. 정치성

주간 집회(...라도 저녁 집회를 일컫는 것이지만)는  시위의 무정치성을 강조한다고 들었습니다. 깃발 내려 소리도 여러 곳에서 하고 말이죠. 근데 왜 촛불 시위가 정치성을 띠면 안되는 것일까요? 오히려 "무정치성"을 내세우는 것이야 말로 가장 정치적인 행위 아닐까요? 무정치성은 결국 모든 계층, 계급에 있어서의 참여를 통해 운동의 성공을 가져올 진 몰라도, 운동의 성공이 정치의 성공으로 이어지긴 힘들지 않나 생각됩니다. 대표적으로 87체제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11. 시위에 대한 가치판단

이 문제 역시. 꽤 복잡하군요. 시위에 참가한 저로서도, 쉽게 내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III. 결

시위에 나가보지 않으신 분들은, 이번 집회에 꼭 나가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20년만에 이익집단이 아닌 개인들의 자발적 연합이 주도가 된 시위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 사정으로 이제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한번 나가보는 것도 개인의 경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정상 이 글의 리플, 트랙백에는 한달이 지난 뒤에야 답변을 달아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라면서.

by 루시앨 | 2008/06/01 09:04 | 일상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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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유종오 at 2008/06/01 13:45
그대와 같은 젊은이가 있기에 대한민국은 분명 희망이 있습니다.
나도 어제 집사람과 함께 그 자리에서 구호도 외쳤습니다.
나라의 미래는 단지 경제성장만으로 밝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깨어있는 국민이 많을수록, 앞장서 실천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건강하고 밝은 우리나라를 만들고 후대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겁니다.
화이팅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8/06/02 02:51
유종오// 그때 같이 계셨었군요 ^^;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김희정 at 2008/06/09 00:27
야 니는 뭘 아프게 물대포나 맞고있어?
나도 나가서 맞긴 했지만-_- 바보 새퀴ㅠㅠ
Commented by искра at 2008/06/09 00:34
ㄴㄴ 이로서 수람 26기 물대포로 맺어진 트리오가 결성되었습니다.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8/06/09 02:06
희정//너야말로 왜;;; 다친데는 없지?
искра//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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