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08일
관계의 스타일
지나가는 커플들을 볼때마다 부러움에 떨게되는 계절이다. 가을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관계지향적으로 만들어주게 하는 묘한 마법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법의 가을'은 나를, 그리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광대한 사건, 사태, 관계의 그물의 다른 이름이다. '청바지에 면티만 있다면 너도 뉴욕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어'란 말은, 아이 러브 프렌즈 2기 따위를 위해 쓰여야 할 문구가 아닌, 지금 이순간 나와 당신을 위해 쓰여야 하는 말이다. (물론 뉴욕이란 말은 적당히 대치하도록 하자.)
문제는 내가 관계의 일부가 되서 변화시키는 것과, 그 관계들이 나에게 와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가을에는 특히, 내가 하나의 주체로서 다른 타자들에 대해 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다. 날카롭게 심장을 관통하려하는 햇살은 어느새 숨을 거둘 찰라이다. "바로 그때였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신촌은 답답하고 뜨거운 거리를 선사했다. 하늘은 비의 장막에서 활짝 열려서 파란 불을 쏟아놓는듯 하였다. 나의 온몸이 긴장하여 권총을 힘있게 그러쥐웠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권총 자루의 미끈한 배를 만졌다."
따라서 반쯤은 풀린 나사가 되었을 때 가을에 대해 서술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것 같다. 가을은, 아니 '마법의 가을'은 나에게 자신에게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어떤 축제로서 나타나기도 하나, 단풍 혹은 낙엽으로서 나타나기도 하나, 그것만은 아니다. 요컨대 누군가에게 연락한다는 것은 내가, 당신이 하지 않는다. '마법의 가을'은 그 자체로서 자신을 산출한다. 처음 있던 것은 가을, 그 살랑살랑한 미풍의 계절 뿐이었다.
서론만 세문단이라니 참 길다. 건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내가 이 관계에 참여하지 않는 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일단 질문 자체가 위의 세 문단을 통해 볼 때 형용모순인것 같다. 이를 피해서 조금 구체화 시켜보면, 마법의 가을은 '오는' 것이 아니라 '오게 되는' 것이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이 자신을 흐르는 바람에, 스치는 낙엽에게 제공하는 것이라 할 때, 이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누군가에게 먼저 만나자는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은 내가 관계를 원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Magical Reality(이것이 뭘 의미하는지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글 중간에서야 밝히는 것이지만, 내 삶의 이야기를 조금 많이 나눈 사람들만이 알아들을 상징이 약간 섞여있다. 몇은 없을테지만 혹시라도 있을 RSS구독자 분들께 미안하다는 말씀 올린다. 혹 관계가 진전되서 술을 먹게 되면 사실 별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가 나를 휩쓸고 가길 바라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다가오는 관계들을 향해 나를 내던진다면? 진전되지 않는 관계에는 쉽게 싫증내고, 진전되는 관계에는 매달리지 않으며, 상대를 볼 때 만남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오랜만에 연락이 오면 반갑지만, 연락이 너무 잦아지면 피곤해지고,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낯설어지는데, 문자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대화할 사람이 없어질것이라 예상하고 불안해 하는 것.
트라우마 때문인지, 나에게는 이런 스타일로 나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은 누구에게나 먼저 연락하고, 먼저 맞추고, 공감하고, 웃고. 이런 세월들 동안 누군가의 기분을 맞추거나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러나 최근 혼자 살다 보니, 난 다시 저세상 속에서 만화경을 통해 이쪽 세상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 내게 오는 외로움은 트라우마가 아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해준다. 나는 그저 그 연락들을 '소소히' 이어나갈 뿐이다. 양방향적이지 않은 이런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이번달엔 누구에게서, 저번달엔 누구에게서. 이런 '갑'의 포지션은, 즐겁긴하지만, 익숙하진 않다. 마치 언젠가 끊어져버릴 실과 같아 보인다.
이는 연애감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아보고, 정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 물론 중학교 1학년때도 있긴 하지만, 그건 어린 나이이니 빼도록 하자.) 언제나 사람을 갈구한 쪽은 내 쪽 이었다. 시간과 돈을 들인 것도 내쪽이었었다. 물론 그런 관계는 보통 양방향적으로 진행되긴 하지만, 관계의 진전을 처음 시작하려 한 쪽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구나.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받을 상태는 아닌것 같다. 사실 지금은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 이외의 것에 노력을 쏟아버리고 싶진 않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까지 내가 내 친구인 사람 누구에게나 대해왔던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내게 특별해야할 어떤 사람이 다가와도, 즉 나와 말이 잘통한다거나 매력이 있는 이성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그 이상을 해줄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감정을 꿈꾼다. 즉, 때로는 성욕을, 때로는 육체적인 안락감(즉, 가슴에 안겨있을 때의 안락함)을 꿈꾼다. 나 자신은 그 이성에게 주기 싫으면서. 나는 어느새 '나만 바라봐'의 태양을 꿈꾸고 있다. (무려 얼마전에 카페에서 ㅎㅅ이와 욕했던 그 노래를!)
이런, 일종의 '갑'의 포지션은, 항상 꿈꿔왔던 것이긴 하지만, 툭 던져졌기에 더더욱 불안하다. 언젠가 모든 관계가 소멸될 것 같고, 더이상 연락하지 않을것 같은 강박관념은 나를 항상 외롭게 한다. 편해도 편하지 않다. 만나는 사람들은 정규화되고, 이야기거리의 표준편차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가을은 더이상 새롭지 않다. 단지 흘러가는 은행나무 잎 만이, 부채살같은 그 몸으로 나를 쓰다듬고 떨어져내릴 뿐이다.
# by | 2008/09/08 00:00 | 일상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